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를 극장으로 초대하는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 시즌2 첫 상영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27일 저녁 부산 중구 신창동 ‘모퉁이극장(70석 규모)’에 모인 관객 60여 명은 전설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2023·이하 ‘엔니오’)를 관람했다. 부일시네마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열리지만, 이날 ‘엔니오’는 러닝타임이 150분에 달해 예외적으로 30분 앞당긴 오후 6시 30분에 시작했다.
2020년 별세한 모리꼬네는 ‘황야의 무법자’(196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시네마 천국’(1990), ‘헤이트풀8’(2016) 등 수많은 명화에 삽입된 음악을 작곡한 전설적인 거장이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모리꼬네가 작업한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의 음악은 모를 수가 없다.

영화 ‘엔니오’는 모리꼬네의 작품에 비해 덜 알려진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영화다. 모리꼬네가 영화음악에 발을 들이게 된 과정과 그만의 철학, 장인 정신, 흥미로운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담겼다. 연출은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여러 영화인과 음악인 그리고 모리꼬네와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모리꼬네가 작업 과정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통찰력은 관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 천재성과 실험 정신은 영화 음악과 영화사에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쳤다. 영화 속 인터뷰이의 표현처럼 ‘영화음악의 창시자’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아 보인다.
모리꼬네는 그러나 차별적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스승을 비롯해 순수음악을 추구하던 음악계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혀 한동안 무시 당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차례 수상이 불발됐다. 모리꼬네가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작업에 매진해 거둔 인간 승리는 큰 울림을 준다.
영화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는 흥미를 유발한다. 감독들이 그의 음악을 너무나 좋아해 다른 영화에 삽입될 예정이던 음악을 가져오려 한 이야기, 음악 테마와 스타일을 놓고 감독과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결국 모리꼬네가 옳았던 이야기 등 수많은 스토리가 녹아 있다.

영화를 통해 다시 접하는 음악들은 확실한 관람 포인트다. 클라이맥스는 ‘미션’에 삽입된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소개하는 시퀀스다. 특히 미션 영화 장면과 엔니오의 오케스트라 지휘 장면을 교차 편집한 신이 압권이다. 이 장면은 오디오 성능이 좋은 극장에서 관람해야 감동이 배가 된다. 모퉁이극장 음향 시스템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펀치감 강한 저음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장면과의 시너지 효과가 아주 훌륭했다.
이날 모퉁이극장에서 추억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다시 감상한 관객들은 감동에 빠졌다. 영화 상영 뒤 다른 관객과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인 ‘커뮤니티 시네마’에선 호평이 쏟아졌다. 모더레이터로 초청된 백현주 루체테음악극연구소 대표가 자연스레 소통을 유도하자 한 관객이 먼저 용기를 내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조금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다”면서 영화에서 언급된 바흐와 모리꼬네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했다. 다음은 관객들의 감상 평.
“영화 너무 감명 깊게 잘 봤다. 아무 기대 없이 와서 더 감동적이다.”
“영화와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대학생이다. 꼭 보고 싶은 영화였고,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왔다. 러닝타임이 길었지만, 모리꼬네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결말부에는 오히려 흥분됐고 경외감마저 들었다.”
“합창단, 뮤지컬, 밴드 등 음악 관련 활동을 해온 대학생이다. (영화에 소개된 모리꼬네의 음악들이) 감정이 동요 되고 벅차오르는 곡들, 다 아는 곡들이었는데 이 모든 게 한 사람이 작곡한 노래였다는 걸 알게 됐다. 경외감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이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와 닿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모리꼬네의 음악과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는데, 영화를 통해 보고 들으니 더 가슴에 스며들었다.”
관객들과 감상을 공유한 백 대표는 “이렇게 영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극장에서 평을 나누는 것이 참 좋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티스트의 열등감은 독일까 약일까”라는 한 줄 감상평을 남겼다. 모리꼬네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량을 소화하며 다작을 한 이유가 열등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백 대표의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백 대표는 “모리꼬네 정도 되는 거장이 왜 아카데미 수상에 집착하는지 의문이었다”며 “그는 평생 영화 530편의 음악을 작업했다. 말도 안 되는 작업량이다. 어린 시절 겪은 수모와 성장기에 느낀 열등감이 다작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편으론 모리꼬네의 삶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커뮤니티 시네마가 마무리된 뒤 모퉁이극장 측은 소감을 말한 관객 중 5명을 선정해 랜덤 영화 포스터를 증정하기도 했다.
부일시네마는 부산닷컴(busan.com)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에서 참여를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영화 관람권(1인 2장)을 증정한다. 오는 6월 상영작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부탄 힐링 영화 ‘교실 안의 야크’(2020)다.
이어 △‘오키쿠와 세계’(2024) △‘딸에 대하여’(2024) △‘새벽의 모든’(2024) △‘낙엽귀근’(2020)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 △‘행복한 라짜로’(2019) △‘크레센도’(2023) △‘타인의 삶’(2007) △‘너와 나’(2023) △‘퍼펙트 데이즈’(2024) 등이 시즌2에 상영될 예정이다.